기도란 무엇인가?
기도가 무엇일까?
* 일반적 이해
祈禱 빌 기, 빌 도. 신에게 빌고 빌다.
바라는 바를 원하는 바를 구함
잘못의 용서를 구하는 것
* 기독교 이해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
잘못을 아뢰는 것
필요한 걸 구하는 것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
아버지의 뜻을 전달 받는 것
망하게 하신 일 회복 풍족 지키신다는 약속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리라. 에스겔 36:37
모든 종교에서 기도를 빼면 기름 없는 등과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는 기도하는 형식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무속인들에게도 필수적인 형식이 기도입니다. 적어도 빌고 비는 것이란 (祈禱 빌 기, 빌 도 )한자의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기도가 어떤 특별한 존재에게 빌고 비는 것이란 동질의미를 가졌다 해도 우리 기독교의 기도는 절대로 다릅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빌다 라는 차원이 아닌 대화한다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빌다라는 말에서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계적, 비인격적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나 대화라고 하면 양자가 상호 소통하는 인격적 관계가 되는 것 입니다. 상호 인격적 관계에서만 인간은 그 존재 가치가 주어지게 되겠지요?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신앙의 대상 존재인 지고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절대로 기계적 또는 노예적 관계에서 빌고 비는 관계에서는 부를 수 없는 호칭입니다.
또 하나는 기도를 대화로 인식하고 절대 자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에서는 그 절대 자가 생생히 살아 현존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빌고 빌어야 하는 존재는 현재 여기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가 존재하든지 존재하지 않든지 저 멀리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존재를 좀 더 자기 곁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좀 더 큰 소리로 부르짖어야하고 최량의 정성을 다 해야하고 최대한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기도의 분량 기도의 정성 심지어 기도의 파워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에는 분량이라든지 정성 또는 파워 같은 누추한 말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니 적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지금 화자와 함께 그곳에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목이 쉬도록 큰 소리를 지를 것도 없습니다 물론 자기 감정을 목청껏 표출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무방하겠지만 지금 여기 같이 계신 아버지가 깜짝 놀라실 수도 있으시니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진정 기독교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고(인격적 관계) 학교에서 배운 것을 믿는다면 너무 큰소리를 지르거나 같은 소리를 반복, 주문같이 외우거나 너무 오래동안 같은 일로 몇 시간씩 아버지를 붙들고 늘어져서 아버지를 지치게 마십시오. 간단명료하게 지금 여기에서 같이 동행하시는 아버지께 말하면 됩니다.
걸어가면서 일하면서 심지어 쉬는 시간에도 하고 싶은 대화를 성경의 법칙에 따라 하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늙는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가 대화를 드리든지 침묵하든지 지루해 하시지는 않으시겠지만 우리 연세 많으신 부모님들도 사랑하는 자식들이 모시고 살 때나 모시고 어디를 갈 때 아주 소소한 것까지 말하며 대화하는 자녀들을 기뻐하지 않으시던가요?
만약 현대 교회가 개혁을 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기도 부터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구약의 물리적 물량적 기도 중세시대 경건주의를 표방한 세상 밖에서의 나 홀로 기도, 지금까지 주신 것도 땅에 묻어 두고 매 시간 무엇을 달라고자 하는 거머리 기도, 중보라는 이름으로 진리는 실천하지 않고 공동으로 모여 합심기도만 하면 다 된다고 말하는 떼 기도, 인간의 허약한 심성을 이용하여 감정을 몰입시켜 일시적 허망한 성취감을 느끼게하는 최면 유도 기도, 자신은 하루 적어도 몇시간은 기도한다며 은근히 자랑하고 그런 자신만 신령한척 하는 어린애 기도,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내며 그래서 신적 기도라고 말하는 잡음기도, 기도하면 꼭 무엇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만화경 기도, 기도하면 온 몸이 뜨거워져야만 한다는 열탕기도, 상달되는 기도는 온 몸이 진동이 와야만 하는 생간질기도, 큰소리를 쳐야만 기도라고 말하며 쉰목소리의 경중을 따라 기도수준을 점치는 고성방가 기도, 기도할 날자나 시간을 정하고 하는 자기 마음 기도, 금식하면 큰 능력을 받거나 자신이 정한 일에 응답이 된다는 굶식기도, 매일아침 금식하면 응답된다는 어부지리 기도, 등 등 수도 없이 많은 다양한 기도라는 것들을 이제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개혁해야 할 것은 과감히 개혁하는 성숙한 기독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으로 아버지와 동행하는 자만이 자격이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오직 유일한 방편으로서 성경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에 복종하며 사는 자들이 어떤 형식에도 매이지 않고 경거망동하거나 망령되지 않는 전제에서 참 자유스럽게 아룀과 간구와 감사로 대화 하는 것임을 바르게 인식할 때 비로서 우리 기독교가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 구원을 담당하는 멋진 교회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