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기쁨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2017년 10월 2일 4시 기준 미국 인구조사국 발표를 보면 현재 세계 인구가 약 75억명이라고 합니다.

 

이 75억의 인구가 각기 다른 세 가지 삶의 방식에 따라 평생을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첫 째가 인간의 오감을 중심하여 만족을 추구하며 일시적 쾌락에 빠져 타락과 방탕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모든 삶의 초점은 육체의 만족에만 맞춰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무지개를 잡으려는 것처럼 저들은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끝내 허무와 절망으로 그 끝을 맺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의 부류가 있습니다. 이들은 육체만을 위한 쾌락 추구가 허무하고 덧없음을 어느 정도 깨닫고 좀 더 높은 수준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종교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끝없는 고초의 현세에서 해탈하여 구원을 얻기 위해 또는 인간의 한계로 넘을 수 없는 죽음이나 질병문제 그리고 지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들만의 하나님을 향해 끝없는 수행과 고행 또는 헌신 및 봉사와 봉헌을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삶 역시 항상 좌절과 절망의 연속 속에 책임전가와 원망과 불평가운데 괴로움과 갈등, 그리고 자기 연민속에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신론자들보다 좀 더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힘들어 하며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모두가 가는 죽음에 길에서 허망함을 토로할 뿐입니다.

 

몇 년전 불교계의 거장 중광스님이 임종을 맞았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스님 한 말씀 남겨주시고 가십시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중광은 간단하게 “괜히 왔다 간다.” 이렇게 가뿐 숨을 몰아쉬며 말하고 죽은 일이 한국의 조선일보에 사진과 함께 기사화된 것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종교주의자들이 맞게되는 당연한 결과와 현상일 것입니다.

 

기독교인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경건하여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자 수시로 금식도 하고 산이나 굴속이나 교회나 강단을 찾아서 기도에 열심을 내보지만 항상 마음은 기도의 분량이 부족한 것 같기만 합니다. 무엇 무엇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는 교회를 위해 수시로 봉사와 헌신, 그리고 헌금도 할 수 있는대로 아낌 없이 드리지만 무엇인지 항상 한 쪽 구석이 빈 것같은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이런 신자들을 볼 때에는 제법 신실하고 경건하고 모범적인 신자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기쁨이 없습니다. 신앙 생활 전반이 어둡고 무겁기만 합니다. 주 안에서의 행복과 기쁨을 진정으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개혁교회로서의 기독교가 아닙니다. 참된 기독교인들로 성경대로 사는 세 번 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매사에 감사하며 범사에 기뻐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르며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진리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 땅에 대한 소망보다는 천국 영생을 더 깊이 사모하며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은 현실적 문제들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더 달라고 하는데 기도의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쁨으로 살까요를 더 많이 구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앞에 닥친 어떤 문제든지 극복하며 참 자유와 평강을 누리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에서 18절 까지는 이런 성도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5:16 항상 기뻐하라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저는 목사지만 한 때 이 말씀에 대한 회의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무오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렇게 꼭 살아야 하는데... 이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충 생각했을 때는 정말 쉬운 말씀이었습니다.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당연한 일이지 신자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목사라면 더욱 더 당연한 삶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느 날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는 동사 앞에 항상이란 단어, 쉬지말고라는 단어, 범사라는 단어에 생각이 집중되자 그렇게 간단히 해석하고 넘어갈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기뻐해야 하는데 항상해야 하고 기도해야 하는데 쉬지말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하는데 범사에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요 지엄한 명령이라면 명사는 빼고 동사만 적당하게 해서도 안되고 동사 없이 명사만 나열해도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람들에게 주안에서 기쁘게 살아왔고 기도하며 살았고 감사하며 살아 왔다고 말한 것들이 양심에 가책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온전하신 하나님께선 당신의 자녀들이 온전한 기쁨을 누리고 완전한 기도를 드리고 충분한 감사를 드리라고 요구하셨는데 반쪽짜리 기쁨, 편의주의적인 기도, 그리고 아주 편협된 감사 생활을 하면서도 깨닫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아전인수격 성경 적용을 하면서 하나님편에서가 아니라 내편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살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제법 신앙이 좋은 것처럼 자위적 자부심을 가졌던 것을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오늘 이런 고백은 어쩌면 다른 신실한 많은 분들보다 한 없이 부족한 목사이기에 저만의 의문점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는 이 말씀에 대한 확실한 해석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제 신앙 생활, 그리고 목회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읽은 성경을 중심으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앞뒤로 다시 정독하면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방법과 쉬지않고 기도하는 법 그리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제시된 하나님의 방법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그렇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거나 실천불가능한 일을 말씀하시고 기록하게 하셨을리가 없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먼저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기쁨이라는 것 또는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들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또는 외부에서 기뻐할 조건들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욥 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는 말씀은 잘못된 말씀이 되겠지요. 그러나 성경의 증언은 확실하고 정직합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기뻐할 일을 기대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전혀 맞지 않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이 기쁨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원리가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살전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는 말씀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을 빛에 아들 낮의 아들이라고 불러주심으로 어두움이 주는 여러 인간의 고통과 고난의 문제가 그들을 아주 넘어뜨릴 수 없도록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구원의 소망이 있는 사람, 믿음과 사랑의 실천이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에게 기쁨의 반대되는 개념들은 적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쉬지않고 기도한다는 의미가 적용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자들에게 이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실천 불가능에 대한 의문점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복이 됩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일을 성경을 따라 만들어 가기 때문에 마음껏 기쁨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성경에서 또한 친절하게도 기쁨과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살전5:11-18절)

 

살전5:11절 말씀에 보면, /피차 권면하고 덕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가운데서 /서로 부족한 것을 잘 깨닫게 해주고 모든 일들이 잘 되도록 협력할 것을 제시해 줍니다.

 

12-13절, 주 안에서 서로 질서를 지키며 아름다운 교제를 하고 서로 가장 귀하게 여겨주며, 화목하라고 자상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 구구절절히 인간 관계에서 서로 기쁨이 될 수 밖에 없는 주제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화목이란 의미를 아십니까?(화목의 뜻 그윽한 사랑의 눈으로 서로 응대한다.)라는 뜻입니다. 화목은 기쁨을 만들어내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요인입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평화를 이루는 핵심 단어이기도 합니다. 더 나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중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시며 성도의 직책 교회의 사명이 화목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14-15절 말씀을 보면, “규모없이 무질서하게 사는 자들을 잘 지도하고 약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돕고 이끌어주며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인간관계에서 오래 참으라는 말씀에서도 지키기만하면 모두 같이 행복하고 기쁨이 될만한 주제들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5절 말씀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을 요약하는 내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선을 좇으라”고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항상이라는 전제의 말씀이 붙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말씀들을 볼 때 기쁨은 가만히 있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단히 만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쉬지말고 기도하라 / 성도들의 필수적인 신앙생활의 덕목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말씀을 기록한 것은 아닐 것인데 세상에 한 사람도 여기 문자로 기록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과연 어떻게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할까요?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자기는 하루 최소한 6시간은 기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새벽부터 시작해서 오전내내 기도만 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머지 시간은 기도하는 것이 아니니 성경적 기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루 몇 시간씩 기도하고 있습니까?

10시간을 기도만 한다고 해도 하루 24시간이니 나머지는 기도하는 것이 아니기에 오늘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19-22절까지 말씀입니다.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5: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21절 범사에 헤아려 라는 말씀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의미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범사는 우리가 호흡하며 움직이고 관계하는 모든 일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간격이 전혀 없는 전 삶의 형태를 범사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바로 그 생활에서 나타나는 언행심사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실행하고 관계하는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실천하고 악한 것은 그 모양이라고 버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전하게 거룩하게 진리에 입각하여 성실하게 사는 사람에게 기쁨이 항상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구요.

 

마지막으로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 다른 것은 몰라도 감사는 절대 억지로 나오는게 아닙니다.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하다는 의식이 확실해야 감사의 표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마음 언어 행동의 일치가 있는 감사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성경은 성도들이 그런 감사가 범사에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과 같은 수준의 명령어인 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희노애락의 어느 때나 성공 실패의 어떤 때든지 감사하라는 말씀인데 하나님의 선택하여 부르심을 입고 구원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보전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라면 꼭 해야할 필수적 삶이 감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아멘!"

 

이제 이 글을 마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항상 기쁨의 삶을 만들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복이 있으며, 진리안에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고 영적 동행을 할 수 있으며, 범사에 감사하고 마음껏 하나님의 은총을 찬송하며 누릴 수 있는 복이 있음을 한 시도 잊지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저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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