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 10조원 육박…흡연·비만보다 피해 커
술에 관대한 문화 바꿔야…"주취 경감 폐지·공공장소 음주 금지"
지난 20일 충남 홍성에서 대학생인 A(22) 씨가 몰던 차가 신호등을 들이받으면서 차에 타고 있던 6명 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차량은 완전히 두 동강 났고 차에 타고 있던 4명이 밖으로 튕겨 나갈 정도로 큰 사고였다. 사고 당시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수준인 0.101%였다.
B 씨는 만취 상태에서 지난 20일 전남 광양시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 입원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의료진에게 욕을 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 B 씨는 병원 측이 '술을 마신 사람은 입원이 되지 않는다'고 거부하자 행패를 부렸다.
크리스마스, 송년회 등 술자리가 몰리는 연말이 다가왔다. 음주운전 사고, 주취 폭력 등 술로 인한 사고 역시 이때가 다른 시기에 비해 많이 발생한다. 음주 폐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10조 원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은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 음주하기 쉬운 환경, 술 권하는 문화 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 송년회 후 운전대 잡는 사람들
음주운전은 연말에 많이 늘어난다. 도로교통공단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를 월별로 분석한 결과, 11월과 12월의 음주운전 사고가 다른 달보다 훨씬 많았다. 11월과 12월에는 5천700∼5천800여건이 발생했다. 1∼10월 발생 건수는 4천800∼5천500여건이었다.
11월과 12월에는 음주운전 사고의 사상자 수도 많다. 1∼10월 사상자 수는 8천400∼9천800여명이었지만 11월과 12월에는 1만명이 넘었다.
연말 음주운전은 평상시보다 만취 상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더 위험하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주취 한계 이상 음주 사고(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는 11월과 12월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 술자리 특성상 폭음할 확률이 높아서다. 전체 주취 한계 이상 음주 사고 건수가 매년 감소하는 것과는 상반된 수치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면 판단력과 속도 통제력이 떨어지고 심할 때는 의식까지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교통사고 위험은 더 커진다.
◇ "연말, 술 먹고 시비 거는 사람 달래는 게 일이죠"
인천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김 모 경장에게 연말이 다가온 최근 가장 큰일은 취객 달래기다. 평소보다 곱절은 늘어난 주취자 때문이다. 김 경장은 "지구대를 안방처럼 생각하고 행패 부리는 취객은 예사다"라며 "이맘때면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왜 고쳐지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입건된 공무집행방해사범 1만5천여명 중 71.4%가 주취 상태였다. 소방구급대원 절반이 주 1회 이상 폭력을 경험하고 폭행자 중 92%가 주취 상태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 주요 범죄자 중 상당수가 주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 범죄백서에 따르면 범죄 유형별 범죄자 중 주취자 비율은 방화 45.4%, 살인 34.9%, 폭력 30.1% 등에 달했다.
박종선 백석대 법정경찰학부 교수는 "주취자의 난동이나 항거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며 "(제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 사진 촬영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술 못 끊는다' 음주율 역대 최고…매일 13명 술 때문에 사망
과도한 음주의 부작용으로 사회가 감당해야 할 손실은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알코올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2013년 4천476명에서 지난해 4천809명으로 증가했다. 매일 13명 이상이 술병으로 죽는 셈이다.
2015년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의료비와 생산성 손실 등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9조4천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흡연(7조1천258억원), 비만(6조7천695억원)보다도 크다.
음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음주율이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분석 결과를 보면 19세 이상 성인이 한 달에 1회 이상 술을 마시는 월간 음주율은 62.1%로 역대 최고였다. 음주율 조사가 시작된 2005년의 54.6%보다 7.5%포인트 상승했다.
술자리에서 남성은 평균 7잔, 여성은 5잔 이상 마시고 주 2회 이상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율은 14.2%로 2008년의 15.4%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국민건강영양조사는 지난해 4천416가구의 1세 이상 가구원 1만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음주운전 사고로 3천450명이 죽고, 24만명이 다쳤다. 교통사고 사상 원인 10%가 음주운전이다.
◇ "술 강권하지 않는 조직문화 필요"
전문가들은 술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술에 대한 관대한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광기 인제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만큼 술 구매 장소나 시간 등의 규제가 없는 나라도 드물다"며 "심지어 음주 장소도 관대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대부분 주와 호주,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 등 80개 이상의 국가는 공원이나 해변,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지나친 음주를 조장하고 강권하는 조직문화도 술의 폐해를 키우는 요인이다.
직장 생활 2년 차인 L 씨는 "회사 회식에서 상사나 선배들이 '일 못 하는 애들이 술도 못 마신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면서 "'술 마시고 풀자', '술 마시면서 소통하자'라고 하는 데 도저히 안 마실 수 없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회식에서 술을 한 번에 들이키는 '원샷'이나 2가지 이상의 술을 섞는 '폭탄주', 잔 돌리고 주고받기 등의 집단위험 음주 행태를 보이는 직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삼육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조사한 '음주문화 특성분석 및 주류접근성 개선' 보고서를 보면 최근 1년간 '원샷'을 해 본 적이 있다는 비율이 79.3%에 달했다. 폭탄주(68.7%)를 마셨다거나 잔 주고받기 등을 했다(53.3%)는 비율도 상당히 높았다.
김 교수 같은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음주를 제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음주문화 특성분석 및 주류접근성 개선'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시민의 96.2%는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 수준을 낮추는 '주취경감'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고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94.8%에 달했다.
제도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는 개인들의 절제와 음주운전 등을 막을 수 있는 준비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김진형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연말에 대리운전 부르기가 쉽지 않고 택시도 잘 안 잡혀서 '그냥 운전하고 가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술자리 시작 이전에 음주운전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식이나 송년 모임에 가기 전에 미리 대리운전을 알아두고 다음 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해야 한다"며 "전날 과음하면 다음 날 아침까지도 술에 취해있을 확률이 높아 숙취 운전도 주의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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